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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최단거리 일본 대도시 ‘후쿠오카’ … 낯설지 않은 편안함

  • 입력일 : 2019-08-02 10:57:08
아사히맥주 생산 캔맥주 한국 편의점 직행 … 고보텐우동·연안시장 스시·모츠나베 등 서민적·깔끔·깊은 맛
일본 후쿠오카시 기온역 인근 도초지(東長寺)의 붉은 5층 석탑과 오래된 나무
후쿠오카(福岡)는 오사카(쿄토·나라)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인이 많이 찾는 일본 여행지다. 비행기로 인천국제공항에서 1시간 1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대도시이기에 탑승시간이나 항공료를 감안해도 이점이 크다. 사계절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고, 음식도 한국인의 입맛에 꽤 맞기 때문에 스테디한 인기를 누린다. 매년 100만~150만명의 한국인이 다녀간다고 한다. 1983년 5월 26일 후쿠오카 시민회관에서 열린 개최한 조용필의 일본 순회공연이 그토록 절창이고 감동의 도가니였다니 리플레이하듯 연상하며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후쿠오카시는 일본 규슈(九州) 후쿠오카현(縣) 북서부의 항구도시다. 메이지유신 때 후쿠오카와 어항·산업항인 하카타(博多)가 통합됐고, 쇼와(昭和) 시대에 기타큐슈(北九州)의 중화학공업 지대가 병합됐다. 하카타는 후쿠오카시 7개구 중 하나로 시의 동남부를 차지하며 지금도 여전히 후쿠오카와 혼동돼 사용된다. 사실상 도심의 핵을 이루는 게 하카타역으로 여기서 전철역과 다양한 노선의 버스를 환승한다. 하카타부두는 후쿠오카만의 가운데 박혀 있는 중심항으로 하카타역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요컨대 공항은 후쿠오카, 기차역과 항구는 하카타라는 이름을 쓴다. 후쿠오카역은 없다.
 
하카타 지구 서쪽엔 젊음과 쇼핑의 거리로 통하는 텐진(天神) 지구가 있다. 그 서쪽엔 넓은 호수의 오호리(大濠)공원이 적잖은 면적을 차지한다. 그보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서북 해안 신시가지(베이사이드, 시사이드로 불림)에는 후쿠오카 타워란 상징물이 멀리 부산을 바라본다.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교외의 ‘벳부(別府)’와 ‘유후인(由布院)’ 등 온천도시도 후쿠오카를 더 찾아오게 유인한다.
 
후쿠오카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구시다(櫛田)신사 정문  
기자는 후쿠오카국제공항에 내려 버스로 하카타역에 도착, 환승한 다음 하카타 캐널시티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여행에 나섰다. 첫 방문지는 구시다(櫛田)신사. 후쿠오카의 정체성을 간직한 신사다. 한쪽에선 결혼식을 올리고, 한쪽에선 정갈한 흰색 또는 검은색 차림의 중년들이 마치 도학자처럼 기도하고 수양하는 자세를 취한다. 참배하기 전에 손을 씻고, 후에도 또 손을 씻는다. 이 신사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경복궁 황후 침전에 난입한 세 사람 중 한 명으로 알려진 토오 가쓰아키가 사용한 히젠토(肥前刀) 칼이 보관돼 있다. 시해범이 1908년 구시다 신사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전시돼 있지는 않다. 신사 앞에 작은 황소상은 민들민들하다. 소를 만지며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가쓰오부시, 다시마, 건표고, 건새우 등을 넣어 달인 육수에 수타면을 넣고 우엉 튀김을 푸짐하게 얹힌 카로노우동집의 고보텐 우동 
신사를 나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캐널시티 인근엔 라멘집이 늘어서 있다. 1884년에 개업해 지금도 수타(手打)로 면을 만든다는 카로노우동집에 들어갔다. 간판 메뉴는 고보텐 우동이다. 가쓰오부시, 다시마, 건표고, 건새우 등을 넣어 달인 육수에 수타면을 넣고 우엉 튀김(고보텐)을 푸짐하게 얹힌 게 특징이다. 우동 마니아가 아님에도 깔끔하면서도 깊은 뒷맛이 지금도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한 그릇에 520엔. 공간이 좁아 점심시간은 물론 늘 사람이 줄을 선다.
 
다음 견학지인 아사히 맥주공장에 들르기 앞서 짬이 좀 나자 기온(祇園)역 인근 도초지(東長寺)를 들러보기로 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후쿠오카 대불과 안뜰의 오층석탑이 대표적이다. 대불은 목조에 금칠을 한 것으로 50엔을 내야 참배 및 관람이 가능하다. 붉은 오층석탑과 그 옆의 오래된 나무가 인상 깊다.
 
도초지에서 서북쪽으로 몇 분가량 도심의 숲속을 지나면 안국산(安國山) 쇼후쿠지(聖福寺)에 도달할 수 있다. 도심에서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시간이 나면 가볼 것을 권한다. 도초지를 기준으로 남동쪽 멀지 않은 곳엔 만송산(萬松山) 조텐지(承天寺)가 있다. 우동과 소바가 후쿠오카에서 시작됐다는 그다지 미덥지 않은 내용을 적은 기념비가 있다. 이 절을 들르려면 하카타천년문을 지나야 하는데 2014년도에 하카타의 무궁번영을 기원하며 지었다고 한다. 기둥은 ‘학문의 신’이 모셔져 있는 다자이후(太宰府)시 텐만구(天萬宮)신사에서 가져온 나무를 썼다고 한다.
 
초기에 후쿠오카에 정착한 한인들이 허기를 달래려 곱창전골을 만들었고, 이것이 일본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모츠나베(もつ鍋)의 원형이란 설이 있다. 한국인이 곱창을 주로 구이로 즐긴다면 일본인은 전골로 먹는다. 이 곳 명란젓도 조선의 영향을 받았으리란 추정이다. 둘 다 서민풍 음식이다. 후쿠오카의 3대 음식은 하카타라멘, 모츠나베, 명란젓이다. 후쿠오카식(하카타식) 모츠나베는 일본 전역으로 퍼져 고단한 일본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음식이 됐다.

도초지를 더 보겠다고 여유 부리다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다케시타(竹下)역 인근 아사히 맥주공장 투어에 나섰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무료다. 안내 직원들이 몇 명 단위로 조를 짜면 바로 투어가 시작된다.
 
하루 350만캔의 맥주를 생산, 이 중 15%가량을 한국에 수출하는 후쿠오카 아사히맥주 공장 생산라인 
여기선 하루에 350만캔의 맥주가 생산되고 약 15%는 한국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만원에 4개’ 하는 아사히 캔맥주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국내 유통 재벌인 롯데에서 수입하니 마케팅이 원활하다. 투어에서는 1인당 3잔의 무료 시음이 가능하다. 딱히 수량은 제한하지 않지만 30분 정도 밖에 주어지지 않아 더 마시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일반 생맥주, 흑맥주, 프리미엄맥주가 제공된다. 생산 즉시 냉장해 가져온 것이라 맛이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무료라 좀 미안하기에 과자 형태의 마른 안주와 닛카(홋카이도 양주회사)의 애플와인을 매장에서 샀다. 애플와인은 귀국할 때까지 밤마다 숙소에서 두세 잔씩 홀짝홀짝 마셨다.

1964년에 지어진 높이 103m의 하카타 포트타워  
해가 떨어지기 전 일본 하카타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1964년에 지어진 높이 103m의 하카타 포트타워에 올라 혼슈를 향해 펼쳐진 바다를 조망했다. 맑은 날엔 베이사이드 남서쪽의 후쿠오카 타워도 보인다는데 날씨가 흐려 감도 잡히질 않는다. 크루즈선, 상선 등과 도심지가 두루 눈에 들어온다. 일본에서 관광객이 두세번째로 많이 기항하는 항구임이 실감난다. 시장기도 돌아 저녁도 해결할 겸 완간(灣岸)시장에 들렀다. 도시락에 담겨 있는 100엔대 안팎의 스시와 초밥이 냉장고에 전시돼 있다. 깔끔하게 손질돼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다. 오징어회, 고등어회, 초밥 등 서너 가지를 사서 꽤 즐겁게 먹었다.
 
하카타항 완간(灣岸)시장에서 판매하는 ‘97엔 스시’
해가 져서 숙소 인근의 맥스밸류, 다이코쿠드럭스토어에서 미리 사소한 선물을 쇼핑했긴다. 사탕, 동전파스, 사케, 치즈, 레이저칫솔, 마른안주 등등…. 귀국해 보니 유용한 것도 있고 덧없는 것도 있다. 점원의 권유나 인터넷, SNS 등의 평판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주관 있게 사야 후회가 없다.
 
밤이 어두어지자 인근에서 가장 핫한 캐널시티에 갔다. 인근과 드물게 세련돼 있다. 도쿄 롯폰기힐스를 설계한 미국의 유명 건축가 존 저디(Jon Jerde)의 작품으로 운하를 가운데에 놓고 C자와 역C자 모양의 건물이 마주 보고 있다. 밤이면 일정 시간에 뮤직 분수가 가동된다. 신나는 음악에 휘황찬란한 조명에 시원한 물줄기쇼가 단조로울 여행에 악센트를 준다. 끝나고 라멘과 스테이크로 출출함을 달래본다. 이로써 바쁜 첫날의 여정이 끝났다. 이동시간이 짧기에 아침 일찍 서둘러 이만큼이나 볼 수 있었다. 이게 후쿠오카 여행의 미덕 중 으뜸이지 않을까.
 
※ 기자는 작년 10월 중순 후쿠오카를 다녀왔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 핵심부품 한국수출 중단 조치, 이른바 ‘일본 징용자 배상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경제보복’에 따른 ‘일본여행 안 가기’ 붐이 불기 한참 전의 일이다.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인간의 양심은 기본적으로 살아 있기에 양국민의 내면 밑바닥은 선하다고 믿으며, 한일 갈등은 엉키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겠지만 경제적·문화적 교류 만큼은 중단돼선 안 될 일이다. 상대를 더 알려 노력하고 상호존중의 마음으로 다가가면 한·일 관계는 개선될 것이다. 양국민들이 더 잦은 왕래와 여행을 통해, 오감을 다 동원해 교감해야 한다.
  • 정종호 기자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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