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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 … 명성산의 억새울음, 한겨울 고즈넉한 산정호수, 국망봉 설산에 아득

  • 입력일 : 2021-01-10 24:41:52
한북정맥에 즐비한 영봉들, 겨울산 눈부셔 … 포천아트밸리·뷰식물원·평강랜드·비둘기낭 등 소소한 볼거리도 많아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요즘엔 여행도 민폐인 시기다. 서울 근교에서 하루이틀 다녀올 만한 곳이 경기도 포천(抱川)이다. 2012년에 착공한 세종포천고속도로의 구리-포천 구간이 2017년 6월 30일 개통돼 서울에서 한결 접근하기 쉬워졌다.
 
포천의 관광 1 번지 산정호수와 명성산
 
예부터 지명에 천(川)자가 들어가면 물이 많고 맑은 지역으로, 계곡도 많다. 자연히 높은 영봉도 많다. 의정부에서 43번 국도를 따라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닿는 포천에는 가을이면 억새축제로 유명하다.
 
궁예의 한이 서린 명성산과 지장산, 아름다운 지질 화석으로 이뤄진 백운산과 왕방산, 등산 꽤나 한다는 사람들이 즐겨찾는 한북정맥의 많은 봉우리 등이 포천에 있다.
 
한북정맥은 북한 강원도 평강군에서 남서로 흘러내려 파주시 교하읍 장명산에서 종지부를 찍는 약 175km의 산줄기다. 추가령에서 백두대간을 빠져나온 정맥은 휴전선 너머 적근산, 대성산(철원군-화천군의 경계, 1175m)에서 남하해 북주산(철원, 1152m), 광덕산(화천-철원-포천의 경계, 1046m), 백운산(화천-포천 경계, 904m), 국망봉(이하 포천-가평 경계, 1168m), 강씨봉(830m), 청계산(849m), 원통산(567m), 운악산(945m), 국사봉(불정산 641m) 죽엽산(주엽산, 포천-남양주 경계 622m)에 이르러야 포천 구간이 끝난다.
 
이어 한북정맥은 의정부시 사패산, 서울 도봉산과 북한산, 연세대 뒷산인 노고산을 지나 파주 장명산에서 서운한 여정을 마친다. 한북정맥의 포천구간에는 광덕산-백운산-도마봉-신로령-국망봉-개이빨산(견치산)-민둥산-도성고개-강씨봉 구간이 하늘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하이라이트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국망봉-개이빨산-민둥산 3km 구간이 가장 아름다운 하늘길로 호평받고 있다.
 
국망봉은 한북정맥의 큰 봉우리이면서 화악산(1468m)과 명지산(1267m)에 이어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사계절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지만 겨울에는 눈꽃과 심설을 즐기려는 등산가들이 일부러 찾는다. 더욱이 국망봉의 남북 능선은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 절개해 놓은 폭 10~20m의 방화선 때문에 눈이 쌓이게 되면 마치 은설의 나라에 온 것처럼 넓디넓은 눈길을 만든다. 겨울 등산은 위험하므로 준비를 철저히 하고 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방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자칫 위험에 처하기 십상이다.
 
포천을 찾아가는 길은 깊고 깊은 산 속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산 속 깊이, 내륙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포천의 가장 대표적인 여행지를 꼽으라면 단연 명성상 일대와 산정호수이다.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산정호수는 애초에는 농업용수가 부족한 영북면 지역의 농지개간사업을 위하여 1925년 관개용으로 축조한 인공저수지였다. 저수지 둘레만 3.2km 이고 수심도 23.5m 나 된다. 산정호수는 계절 구분 없이 사계절 내내 관람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따스한 봄날에는 다른 곳보다 늦게까지 벚꽃이 지천에 피어 있고, 여름에는 시원함과 청량감이 그만일 뿐더러 눈 내린 산정호수는 한겨울의 고즈넉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호수를 둘러싼 수변산책길을 거닐다 보면 어느 계절에 가도 후회가 없다. 특히 둘레길은 수상 데크길, 수변 데크길, 숲속 산책로 등 다채롭고 서로 연결돼 어느 길로 시작해도 언젠가 다시 만나도록 구성돼 지겹지 않다. 부지런히 걸으면 한 바퀴를 다 도는데 약 1시간가량 소요된다. 
초겨울 산정호수의 석양
호수 물 위에서 반대편에 병풍처럼 둘러선 명성산의 모습을 통째로 담을 수 있다. 명성산-국망봉-개이빨산이 어깨동무를 한 듯 나란히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감탄을 자아낸다. 물 위를 걷는 맛도 일품이고, 가끔 걸음을 멈추고 수변 절벽에 파도치듯 밀려드는 물결을 바라보면 눈이 시원해진다. 겨울이면 산그늘 짙은 곳에 하얗게 남아 있는 잔설이 북국을 실감케 한다.
 
숲 속 산책길에는 자태가 당당한 소나무들과 함께 한다. 호수 위로 척척 늘어진 모양이 친근하다. 군데 군데 궁예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조형물과 ‘꽃길만 걷게 해줄게’ 같은 글귀가 적힌 표지판이 단조로운 산책에 포인트를 준다. 물론 아무런 것이 없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산정호수는 국민관광지답게 식당가와 놀이동산 및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다. 어쩌면 번잡할 만큼 너무 많은 게 들어서 있다. 조각공원의 작품은 해설과 작품이 따로 노는 듯하고 오히려 풍광을 해치는 측면도 있다. 지난 연말 포천시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예쁘게 산정호수 입구를 단장했다. ‘2021년 새해 건강하이소’라는 표어가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왕건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명성산 자인사 … 드라마 ‘돌담병원’ 촬영지 
궁예의 패망과 왕건의 건국이 명암을 교차하는 포천 명성산 자락 자인사 절터
산정호수 뒤편에는 명성산(鳴聲山) 자인사(慈仁寺) 라는 사찰이 있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태조로 재위하자 이 자리에 자신의 시호를 따서 신성암(神聖庵)이란 암자를 짓고 국태민안을 기도했다. 
포천 멍우리협곡
왕건과 궁예 모두 이곳에서 기도를 드렸다는 점이 흥미롭다. 왕건은 궁예의 명을 받아 후백제와의 일전을 앞두고 이곳에서 기도를 드린 후 대승을 거두었다. 나중에 궁예는 왕건의 군사에 쫒겨 지금의 명성산성에 진을 치고 책바위 앞에서 제사를 올리고 기도했으나 끝내 나라를 되찾지 못하고 책바위 아래 동굴에서 살해당하고 말았다.
 
명성산은 우리말로 ‘울음산’이다. 억새가 가을이면 구슬프게 운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고, 궁예가 왕건에 패배하면서 진한 울음을 울어서 그랬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궁예의 부대는 대부분 미륵세상을 꿈꿨던 농민군이었다. 상재(商材)와 현실감각을 갖춘 왕건의 부대와는 달랐다.
 
패한 궁예가 철원 금학산으로 도주하기 위해 지나갔다는 ‘패주(敗走)골’, 패전한 궁예군사들에게 항서를 받았다는 ‘항서(降書)받골’, 궁예가 흐느끼며 넘었다는 ‘느치고개(눌치)’, 궁예가 은신했다는 ‘궁예왕굴’ 같은 지명이 망국의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강씨봉(康氏蜂)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던 부인 강씨를 유폐시켰다는 곳이다. 이후 왕건에게 패한 뒤 강씨를 찾아나섰으나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국망봉에 올라 도읍(철원)을 바라보며 탄식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신성암은 300여년 후 화재로 전소돼 고려 충렬왕 3년에 중건했다. 왕건의 자호를 따서 약천암이라 했으나 이 역시 이어지는 거란의 침입과 6.25전쟁 등으로 절의 문헌과 기록들은 모두 소실되고 구전으로 전하는 이야기와 절터만 남아 있다.
 
지금의 자인사는 1964년 김해공 스님이 터만 남은 곳에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중창한 절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웅장한 자인사 극락보전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극락보전 뒤편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책바위에 입이 딱 벌어진다. 바위의 형상이 책을 편 모습과 닮았다하여 ‘책바위’라고 불리는데 명성산의 기운이 모두 응집돼 있는 느낌이다. 보고만 있어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극락보전 건물은 1993년 정영도 스님이 다시 지었다.
 
절 입구에는 잿터바위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운 왕건이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 기도를 올린 곳이라고 한다.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이 개구리를 낚아채기 직전의 모양이라고 한다. 책바위와 잿터바위는 ‘기도발’이 끝내 줄 것 같다.
 
산정호수 뒤편 계곡길은 수형이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우거져 호수와 숲의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소나무길을 따라 달리다 반가운 장소가 눈에 띈다. 길 한편 커다란 돌에 적힌 ‘돌담병원’ 표지석이다. 2016년과 2020년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배경이 된 곳이다. 
포천국립수목원(광릉숲)의 만추드라마는 무대가 강원도 정선이라고 소개됐지만 실제로는 포천 산정호수 뒤편에서 찍었다. 25%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의 촬영지를 우연히 만나는 것은 여행의 덤이다. 돌담병원은 구 가족호텔이었으나 드라마 촬영을 위해 건물 외부만 개조했다. 드라마 속 병원 내부는 파주의 촬영장이었다. 건물 중앙에 병원 간판과, 하얀색 벽을 타고 올라가는 인조 덩쿨, ‘히포크라테스 선서문’ 등은 모두 소품들인데도 실제 병원보다 더 진짜 같아 보인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즈음 돌담병원 앞 소나무가 기가 막히게 서정적이었다. 돌담병원에서 2km 정도 산길을 더 달리면 자인사에 닿는다.
 
포천에는 여름철 물놀이터로 영평천, 백운계곡이 쉬기에 편하고 아름답다. 포천국립수목원(광릉숲)은 용인 한택식물원, 태안 천리포수목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수목원으로 꼽힌다. 
포천아트밸리이밖에 폐채석장으로 방치되던 화강암 절벽에 에메랄드 빛 인공호수를 조성한 포천아트밸리, 야트막한 산자락에 경관농업 차원에서 조성한 2만평 규모의 조그만 식물원인 포천뷰식물원(튤립·양귀비·백합·야생화 등 조성)과 캠핑장, 허브 관련 체험 박물관 겸 테마 식물원인 포천허브아일랜드(옛 포천허브랜드), 명성산과 산정호수 기슭에 고산식물 및 야생화 위주로 조성한 정통 수목원에 평강랜드(옛 평강식물원), 27만년 전 화산 활동으로 주상절리가 드러나는 비둘기낭폭포, 배상면 주가가 운영하는 술 공장 겸 술문화 갤러리인 산사원, 대형 패밀리 온천 리조트인 신북온천 등 사시사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포천 막걸리와 갈비구이는 익히 모르는 이가 없는 명품 먹거리다. 
  • 변영숙 여행작가 rubra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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