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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급작스런 박원순 시장의 선택 … 정신심리적 진단은?

  • 입력일 : 2020-07-15 17:06:17
우울증‧이타적자살 등 일반적 고위층 자살 양상과 달라 … 이상과 괴리된 자신에 대한 부정과 회피, 조심스러운 추측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은 여러모로 사회에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그의 죽음에 성추행 스캔들이 연관돼 있다는 게 드러나면서 더욱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는 여비서에게 4년간 부적절한 성적 언행을 이어오다가 피소를 당한 직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 공직자나 기업인이 검찰조사를 앞두고 또는 받던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2019년 말 청와대 민정수석실 수사관, 상상인그룹 펀드 관계인, 2018년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노회찬 의원, 2016년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 2015년 방산비리 관련 LIG연구원, 2014년 간첩사건 국정원 과장 등이 검찰조사 전후 자살 혹은 자살을 시도했다.
 
직전까지 시정과 매스컴 활동에 적극적 … 우울증 아냐
 
전문가들은 수사 중 혹은 수사 예정 상황에서 자살은 명예를 지키거나 결백을 주장하고 싶은 수단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상황을 회피하려는 목적도 존재한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박 전 시장의 자살은 석연찮은 점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평가다. 고민의 시간은 짧았고 선택은 빨랐다. 그의 심리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흔적도 거의 없다. 그의 심리를 추정하고자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에게 취재를 요청한 대부분의 전문의들은 “너무 민감한 상황인데다 남겨진 것들이 없어 추측이 힘들다”고 거절했다. “내가 도리어 고인에게 묻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지나치게 급작스러운 그의 자살을 두고 흔히 우울증을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지난해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이어오다가 갑자기 서울 홍은동 뒷산(북한산 초입)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정두언 전 국회의원은 평소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박 시장 역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우울증’이 있었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스트레스가 자살을 촉발시킨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박 시장의 경우 우울증과 별 관련 없어 보인다고 의견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유명 정신과 전문의 A는 “숨겨진 우울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직전까지 매우 의욕적으로 시정활동을 펼쳤으며, 라디오 방송 등 미디어에 나서는 일도 적극적이었다”며 “현상만 봐서는 우울증의 흔적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조사 전후 소속 집단 지키려는 ‘이타적 자살’ 많아 … 박 시장 양상 달라
 
사회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밀 뒤르켐은 그의 대표적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의 유형을 크게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성 자살(아노미: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 가치나 도덕 기준이 없는 혼돈상태), 숙명적 자살로 구분한 바 있다.
 
사회적 통합 정도가 낮을 때, 즉 개인이 사회로부터 소외되면 이기적 자살이 일어날 수 있다. 반대로 통합 정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이타적 자살이 발생한다. 사회적 규범이 무너지거나 자기 통제가 약하면 아노미적 자살이, 사회적 규제가 과도해지거나 경직되면 숙명적 자살이 나타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자살은 4가지 유형으로 명징하게 구별할 수는 없으나 굳이 나눠본다면 사회적인 압력이 없는 상태에서 고독과 생계 등을 이유로 삶의 의미를 놓아버린 노년층‧빈곤층의 자살은 이기적 자살로 볼 수 있다. 청소년기의 반항과 일탈 등에 따른 자살, 범죄 후 자살 등은 아노미적 자살이다.
 
고위직과 기업 임원들이 검찰조사 전후 주요한 사실을 함구한 채 자살한 사례들은 대체적으로 이타적 자살 혹은 숙명적 자살에 속한다. 이타적 자살은 자신의 소속집단에 피해를 주기 싫어서 스스로를 ‘희생’한 경우를 말한다. 

숙명적 자살은 ‘개인이 사회나 조직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 규범이 필요 이상으로 심할 때 발생하는 자살을 일컫는 개념으로, 서구 사회에서는 실제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국내서는 연간 560여 명(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추산)에 달할 정도다. 예컨대 과도한 업무 중압감이나 사회적 경직성이 심할 때 일어나는 자살의 유형이다. 
 
하지만 검찰 조사를 앞두고 선택한 박 시장의 죽음은 이타적 자살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그가 앞둔 조사는 매우 개인적인 범법행위에 대한 것으로 유죄가 밝혀진다 한들 그가 소속된 집단에 불명예를 안겨줄지언정 실질적인 피해는 입히지 않기 때문이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짤막하게 남긴 유서
그래서 박 전 시장의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을 드러낸 이기적 자살과 일탈 등에 따른 결과를 회피하기 위한 아노미적 자살에 가깝지 않겠냐는 게 조심스러운 분석이다. 짧고 간결한 박 사장의 유서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직을 위해, 주변인을 위해 자살하는 이들의 유서는 소속된 집단과 외부 집단에 전하는 메시지가 비교적 강하고, 사후 일들에 대한 염려와 당부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개된 유서는 아주 짧고 구체적인 주장이나 메시지도 없었다.
 
그의 유서는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 달라. 모두 안녕.” 이렇게 5줄이 다였다.
 
도덕적 우위성에 손상 … 추구하던 것과 다른 모습,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
 
박 시장의 죽음이 이토록 파장은 큰 이유에는 유명 정치인의 갑작스러운 자살이라는 것 외에도 그의 일생이 보여준 것과 너무나 다른 사건이 죽음과 함께 수면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오랜 시절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 도덕지향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는 1986년 서슬퍼런 독재시절 경찰에 의해 저질러졌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변호인 중 하나였다. 인권변호사로 부당한 권력에 맞서 약자 편에 섰고, 묻히기 쉬운 여성의 인권 신장과 권리를 위해서도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전문가 중 일부는 “박 시장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도덕적 우위에 손상이 간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자살은 회피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굳이 결백을 주장하거나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게 그런 이유에서라는 분석이다. 유서에는 구체적인 사과도 없었다. 그가 사과한 것은 ‘모든 분’과 ‘가족’이었으며 안녕을 고한 것도 ‘모두’였다.
 
명확한 사과와 속죄의 단어가 없는 이유도 그가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놓을 수 없어서라는 주장이다. B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그는 높은 명예를 가진 성공한 정치가로서 그 기반에는 평생 일군 높은 도덕성이 자리한다”며 “속된 말로 대통령 외엔 다른 목표가 다 채워진 인물인데 이제와 자신의 기반이 흔들리고 부정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과 피소 후 너무나 달라지게 비춰질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직시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란 설명이다. 법정에서 죄과를 다퉈보거나 언론을 통해 해명해보는 등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빠르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에는 일생 추구한 이상과 너무 다르게 표출될 자신의 모습이 괴리되는 것을 차마 용인할 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고위층의 일탈, 견제 시스템의 부재 … 개인 의지에만 맡겨선 안돼
 
존경받을 만한 일생을 보낸 고위층에서 성적일탈이나 부정부패로 한 번에 모든 명예를 잃는 경우가 최근들어 지나치게 자주 보인다. 도덕을 지키는 일은 일종의 끝나지 않는 전쟁이다. 안팎에서 일어나는 유혹과 쉼없이 싸워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혹은 타인의 권력으로 견제되지 않는 자리에 오르게 되면 오직 스스로의 의지로만 그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지원군이 사라진 것이다.
 
박 시장이 앞서 안희정 지사와 오거돈 시장의 사례를 보면서도 일탈을 지속했던 것도 그런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에밀 뒤르켐은 자살을 사회적 문제라고 명시하며 사회적 책임을 주장했다. 고위층‧지도층의 일탈과 그에 이어 오는 자살도 사회적 책임이 분명 존재한다.
 
2018년 미국 하버드비즈니스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촉발된 미투(me too)운동 이후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의 성추행 등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으며, 노골적인 성희롱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동시에 주요 업무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등 은밀한 성차별은 더욱 공고해졌다.
 
고위층이 유혹은 느끼니 유혹을 멀리하겠다는 의도이든 혹은 감히 반기를 든 여성에 대한 분노와 복수이든 차별적인 대응은 해답이 되지 못한다. 뇌물과 비리에 대한 견제의 시스템이 공고해지듯 성희롱 등에 대한 견제와 예방적 감시 시스템도 구축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 김지예 기자 kjydream@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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