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호의 시니컬 퍼스펙티브

​세대갈등을 풀려면 젊은이가 무기력증에서 탈출하게 하라

  • 입력일 : 2020-06-10 22:03:38
세대간 소통도 중요하지만 ‘40대 기수론’‘3선 제한론’이 더 실질적 … ‘조기 증여’에 세제 혜택 부여도 대안
세대갈등은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경제적 자유, 정치적 권한, 이상과 욕망의 동기를 부여해 무기력증에서 탈피하는 게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출처 픽사베이
최근 여러 설문조사는 대한민국의 사회갈등이 심각하다고 보는 사람이 80~90%에 이른다는 수치를 내놓고 있다. 어떤 설문조사는 빈부갈등(계층갈등)을, 어떤 조사는 이념갈등을 가장 비중 높은 갈등으로 내세운다. 둘 다 불가분의 관계여서 조사를 기획한 입장에 따라 보는 앵글이 달라져서 그랬을 것이다. 

짧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설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전후로 이념갈등이 더 심해졌다. 게다가 조국 전 민정수석의 이중성, 문재인 대통령을 정점으로 ‘달나라 타령’하는 교조적 좌파성, 윤미향 기억정의연대 출신 국회의원의 사리사욕 의혹 등은 갈등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됐다. 이에 맞서 과거 시대에 향수를 느끼고 지금의 경제·안보·교육에 대해 심각한 불안정성을 느끼는 보수 성향 세력이 으르렁거리고 있다. 

1980년대에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역갈등은 근래에 전체 사회갈등의 5%미만으로 비중이 줄었다. 설문조사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지 과연 영호남 대립과 다른 지역의 영호남에 대한 경계심이 만족할 수준으로 해소됐다고는 볼 수 없고 다만 겉보기에 미봉이 됐다고 할 것이다. 

이념갈등과 빈부갈등은 세대갈등, 남녀갈등(젠더갈등), 지역갈등과 맞물려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 중산층 이상, 남성, 1960년대 이전 기성세대, 영남은 보수를 선호하고 그 반대는 진보를 추구한다는 게 굵은 줄기이고 그 안에서 특정 요소에 가중치를 둬 최종 성향이 결정될 뿐이다. 다만 지난 4월 21대 총선에서 20대 젊은 남성들이 날로 거세지는 여풍(女風)에 대한 견제로 보수 야당을 상대적으로 많이 찍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전체 사회갈등 중 세대갈등과 남녀갈등은 다크호스이긴 한데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아마도 각각 10% 남짓한 비중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 논하려는 세대갈등은 인류의 태동 이래 계속돼왔지만 한국 사회에선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 세대갈등의 시발은 젊은이들의 무력감에서 왔다고 본다. 중고생 중 상당수가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어요”, “재미있게 행복하게 무난하게 살다가 가면 되지 않나요”, “통일이 싫어요. 거지 같고 거친 북한 사람과 부딪히기 싫어요. 통일되면 우리 호주머니가 얼마나 털릴까요” 이런 말을 한다.

돈도 출세도 욕망도 집착도 없어보이는 모습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너무도 화려하고 강렬한 삶을 접한 반면 현실은 그렇지 않아 벌써부터 심신이 권태로운 탓일까. 학업스트레스에 짓눌려 영혼이 빠져나간 ‘좀비’가 된 것일까. 물질적으로 절대 결핍이 사라지고 부모가 온갖 것을 다 챙겨주니 안온한 타성에 젖은 것일까.

1990년대 이후 의식주가 상당한 수준 이상으로 향상되면서 그에 반비례해 어려움을 뚫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루틴이 점차 청소년 사이에서 사라지는 양상이다. 스스로 고난을 헤쳐나가며 고유의 존재감과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다. 엄마의 잔소리, 학교에 가도 여선생님들이 많은 교육환경이 청소년들은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이는 비단 학업 성적이 저조한 청소년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대전에서 공부해 서울 K대 의대로 진학한 올해 신입생 김 모 군은 “의대는 졸업하겠지만 의사로서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며 “의사로서 어떤 보람을 느껴보겠다거나 심지어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는 생각조차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엄마가 의대 가라고 해서 간 것이고, 점수가 그런대로 좋아 그에 맞춰 선택한 것일 뿐 뭐가 되겠다는 의지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과 창의성은 아빠에게서 나온다며 ‘아빠육아’가 강조되고 있다. 분명히 공감하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빠가 육아에 시간을 많이 쓸 만큼 세상은 녹록지 않고, 핵심적인 결정권은 아빠가 아닌 엄마가 갖고 있다. 자녀가 좋은 대학가는 것은 시댁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극성이란 3대 요소에 달렸다는 떨떠름한 시쳇말처럼. 오히려 여성들이 육아의 고통과 부담을 덜 지기 위한 명분쌓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1980년대 이전에 비춰보면 요즘 아빠는 자상하고 자녀들과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 

흔히 세대갈등을 줄이려면 기성세대가 젊은이와 소통하고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꼰대처럼 ‘나 때는 말이야’, ‘요즘 애들 왜 이렇게 나약해’, ‘한번 해보기라도 했어’라고 다그치고 종용하는 상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를 직장내 언어폭력이나 강압 등으로 규정하고 윗사람을 혼내는 직장(특히 공무원 공공기관 대기업 등)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이들도 대충 자각할 것이다. 단지 어른들이나 상사가 따스하게 보살펴준다고 해서 지금의 전반적인 무기력과 이로 인한 세대갈등이 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회사 다니기 싫은 것은 완고하고 억압적인 상사가 개인주의에 상처를 직장 문화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근원도 알 수 없는 무력감에서 세대갈등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으며 그 원인을 찾아 명백한 해결책을 내야 하는 게 기성세대에게 달려 있다. 부모가 만들어준 온실에서 자라 따가운 햇볕과 거친 비바람에 노출되지 않은 게 무력감의 배경이다. 운동과 취미생활도 더 많이 하고, 입시 준비를 위한 ‘포인트 따기’식 교육을 허물어야 하는데 과연 교육당국이 그런 원대한 비전을 갖고나 있는지 한심스럽다.

그렇다고 젊은이나 이들을 키운 부모세대를 탓할 겨를이 없다. 일본이 1990년부터 약 20년간 경제가 침체한 ‘잃어버린 20년’이 온 배경을 보면 일본 전후의 단카이(團塊)세대가 후배세대에게 ‘너희들은 우리만큼 못할 거야’라는 식으로 핀잔을 주고 조롱한 탓이 크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신세대들은 장년·노인세대를 욕하면서 사회의 융화가 깨지면서 경제 회복이 지연돼 20년이나 걸렸다는 분석이 있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서면서 ‘1억명 총활약 시대’란 캐치프레이즈로 세대갈등이 어느 정도 봉합돼 1970년대처럼 일본 젊은이들이 취직 잘 되고 역동적으로 바뀐 것은 최근 수년 사이의 변화다.  

젊은이들은 점점 좌파 성향을 띠어가고 있다. 전교조가 장악한 좌파 일색의 교사들이 긍정보다는 부정을, 더하기보다는 빼기를, 포용보다는 편가르기와 방어적인 삶을 가르치는 경향이 짙어졌다. 과거 1970~1980년대 군사정권에서 교육받은 모든 게 다 지금 기성세대에 폐해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민주화를 불러왔다. 안티의 안티는 더 강해지는 법이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전교조는 더 맹독성의 역사의식과 인생관을 청소년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세대갈등은 좌파 정치인들이 젊은이에게 던지는 호의적인 언사나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의 현금복지 살포로 해결될 일이 아닌 듯하다. 좌파 지도자들은 청소년에게 경쟁을 통해 발전을 도모하기보다는 경쟁 없는 아늑함 속에서 평등하게 지내자고 가르치는 측면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0대 기수론’을 꺼낸 것이나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3선 제한론’ 발의를 추진한다는 게 오히려 젊은층에게 힘을 주는 제안이 아닐까 싶다.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이상, 돈과 지위에 대한 적절한 탐욕, 쾌락과 성취를 동시에 조화롭게 추구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갖추도록 교육하는 게 세대갈등을 해소하는 기저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불평등에는 예민하면서, 성취를 통한 자유의지를 잃어버린 게 오늘날 청소년의 자화상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당 안에서 ‘보수, ‘중도’란 말조차 쓰지 말라고 얘기했다. 개인의 자유를 만끽할 실력과 의지를 가져야 하고, 최소한의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며 ‘청소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보수인데 다시 보면 진보다. 보수든 진보든 양극단이 되면 전체주의이고, 유연해지면 돌고 돌아 상대방의 입장과 나의 견해가 대등소이해지는 게 큰 정치이고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밑바탕이 된다. 얼핏 이명박 전 대통령도 ‘실리실용’을 앞세워 몰이념의 정치를 추구했지만 그의 얄팍한 철학과 기회주의적 국정관리는 그를 자멸에 이르게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타고난 또는 축적된 순수성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게 결여됐다. 

요즘 젊은이들의 좋은 점도 많다. 어떤 친구는 너무 반듯하게 예절과 공중도덕, 양심을 지켜 두루뭉술하게 지내온 기성세대로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오지 않아서 말씨가 곱고 매너가 좋다. 컴퓨터나 영어를 잘하는 것도 부럽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타인에게 어느 한도 이상으로 도움주려 하지 않는 측면은 아쉽다. 상당수가 발음이 짧아 투덜대는 말투로 들리는 ‘애성’을 쓰는 것도 고쳐야 할 점이다. 젊은이들이 원대한 이상과 바람직한 욕망을 품고 여기에 명예심·윤리·헌신까지 갖춘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세금과 부양의 책임을 남기고 있다. 상위 5%이내 부자층은 1980년대 이후 근 40년간 더 많은 부를 축적해 가난한 집 자식들이 더 힘들게 살 여건을 만들어버렸다. 이 때문에 세대갈등이 심화되는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런데 최고 상층에 부유세를 거둬들인다고 해놓고선 막상 실효성 있게 밀어붙이지도 못하고 번번이 유리지갑, 중산층에서만 더 뜯어간 게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자행돼온 정치 행태다.  

세대갈등을 해소하려면 상속 대신 조기 증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세제를 개편하면 어떤가. 이른 나이에 증여했다가 젊은 자식이 다 날려먹을까봐 걱정하기 십상이지만 거꾸로 안정적인 재테크로 자립기반을 일찍 잡게 하면 무기력증과 세대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두 내것이 있어야 행복하다. 
  • 정종호 기자·약학박사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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