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호의 시니컬 퍼스펙티브

트로트 열풍, 템포 빠르고 비트 강하되 예전 정서는 사라져

  • 입력일 : 2020-08-31 21:35:22
서양 곡조에 일본 ‘엔카’ 접목돼 따라하기 쉽고 슬픈 정서 … ‘왜색’ 비판에도 긍정적 우리문화 자리매김 … KBS, 7080노래 및 트로트 홀대 유감
1980년대 트로트 가요계를 휩쓸었던 계은숙과 김연자 가수의 음반 표지사진(출처 제니뮤직)
2019년 종편채널인 TV조선에서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프로그램을 대성공시키자 여기저기 종편에서 모방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개그맨 유재석 또한 ‘유산슬’이란 가명으로 트로트 ‘합정역 5번 출구’를 불러 지난해 MBC 연예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다.

10대 위주의 걸그룹 또는 보이그룹 등으로 짜여진 가요시장에서 트로트의 부활은 소외됐던 중장년층과 노년층을 끌어당기고 있지만 젊은이에겐 촌스럽고 구닥다리 같고, 실제 전통적인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쿵쾅쿵쾅 요란하기만 할 뿐 옛 정서가 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트로트는 사실 서양음악에서 시작됐다. 트로트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1894년 갑오경장 이후 1920년대 이전까지 회자된 파랑새, 학도가, 희망가, 방랑가 등은 판소리나 전통 민요와 달리 서구식 음계와 리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트로트의 원류가 일본의 ‘엔카’(演歌)라는 사실은 맞다. 일본은 서구 열강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메이지유신을 하면서 음악 분야에서도 서양음악과 일본 전통민요가 복합된 ‘엔카’가 1880년대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당시 엔카는 4박자로 사회변혁을 꿈꾸던 일본의 반사회 성향의 청년들이 서양의 빠른 행진곡에 일본 전통음악을 접목해 엔카를 만들었다. 엔카라는 이름은 기록상 1888년 ‘엔카장사단(演歌壯士団)’ 이란 젊은 청년 연극 단체가 연극 중간중간에 부른 2~3분 분량의 짧은 공연곡에서 유래했다. 해외 신문물을 가장 먼저 수용하고 사회변혁을 간절히 원했던 젊은이들이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게 후렴구를 만든 게 엔카의 원형이다.
 
엔카는 이후 부드럽게 변모해 7음계의 빠른 4박자 풍에서 5음계의 다소 느려진 2박자 풍으로 변모했다. 연극 막간에 부르는 삶의 애환과 실연, 비참을 노래하는 느린 템포의 노래가 관객에게 먹혀들면서 일본식 2박자 뽕짝이 뿌리를 내리게 됐다.
 
이같은 멜랑콜리한 엔카풍은 1920년대에 한국에 흘러들어왔다. 이는 막 태동한 창가나 ‘신민요’(또는 당시 유행가, 지금의 트로트)에 영향을 줬다.
 
1926년 국내 최초로 레코드 녹음된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루마니아 작곡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i)의 4분의 3박자 왈츠곡 ‘다뉴브강의 잔 물결’이란 곡의 멜로디에 윤심덕이 오랜 연인이었던 유부남 극작가 김우진과의 못 이룰 사랑을 비탄하매 김우진이 가사를 붙였다. 한국인 최초로 소프라노 성악을 전공했던 윤심덕은 일본에서 음반을 레코딩하고 귀국길에서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 동반 자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의 찬미는 사실은 왈츠풍인데 이를 계기로 이후 엔카풍의 전통가요를 트로트라고 부르게 됐다. 트로트(Trot)는 말이 리듬에 맞춰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는 의미다. 191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한 폭스트로트(Foxtrot)라는 4분의 4박자의 빠른 춤곡으로부터 트로트란 네이밍이 이뤄졌고, 장르로 굳어졌다.
 
그런데 느리고 슬픈 곡조의 옛 노래, 예컨대 ‘타향살이’, ‘황성옛터’ 등은 4분의 3박자 왈츠곡이다. ‘애수의 소야곡’, ‘홍도야 울지마라’ 등은 엔카풍의 2박자 트로트다. ‘대지의 항구’, ‘청춘의 꿈’은 살짝 신나는 2박자의 폭스트로트 노래다. 정작 4분의 4박자의 빠른 트로트는 1970년대 이전까지는 드물었다. 이는 전통 트로트는 엔카와 정서와 박자가 가깝다는 얘기다.

사실 초기 전통 트로트는 고전 전통민요에 비해 서구적이고 고상한 음악이다. 가수는 성악가창법으로 불렀고 바이올린 등을 반주에 넣었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트로트는 ‘왜색’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사람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 간에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 한동안 트로트를 왜색가요로 몰아붙이며 이를 퇴출하려는 바람이 불기도 했다. 당시 노동은 목원대 음대 교수는 “일본 민족은 대체로 ‘요나누키’ 음계(도레미솔라도)와 ‘미야코부시’ 음계(라시도미파라)에다 4분의 2박자로 된 ‘밥그릇’을 역사적으로 만들어내고, 여기에다 여러 곡조의 밥을 담았다”며 “‘뽕짝’은 일제 40년 동안 친숙해지도록 강요된 ‘거짓노래’이며 우리의 한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고 보면 아리랑의 한과 트로트의 처량함은 정서의 결이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전통민요는 그 안에 흥이 있고 저항의 의지도 보이는데 트로트는 마냥 처지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일본 만화영화 주제가 ‘우주소년 아톰’, ‘마징가Z’, ‘캔디’ 등과 상당수 우리 군가와 건전가요 등이 빠른 2박자 엔카의 풍이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 민족 고유의 것이 얼마나 된다고 할까. 국악은 물론 고려청자, 심지어 한국의 불교와 기독교도 다 우리 실정에 맞게 토착화된 것이다. 서양 곡조에서 시작된 엔카는 우리 트로트에 영향을 줬고 우리 정서를 담아 발전해온 측면이 있다. 이를 인정하고 긍정성을 갖고 트로트를 대할 필요가 있다.
 
대중가요 중 디스코, 발라드, 록, 포크, 재즈, 왈츠, 칸초네, 탱고, 고고 등의 장르에도 정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트로트의 입김이 조금은 들어 있다. 발라드풍인 조용필의 ‘허공’, 구창모의 ‘희나리’,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 등이 그런 영향의 일부다. 발라드풍인데 트로트 느낌이 좀 있으면 젊은층이나 중장년층에 어필돼 안정적인 인기를 얻고 가수가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됐다. 과거 록 가수였던 유현상, 우연희 등이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것도 경제적 이유가 컸다.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조용필의 가창력이나 초기의 한국적 정서들이 왜 나이를 먹어갈수록 퇴락하는지 생각해봤더니 목소리의 힘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일본으로 진출해 그쪽 사람들 분위기에 맞는 창법으로 적응한 게 한 이유였다. 확실히 조용필 8집부터는 그런 영향이 느껴진다.
 
트로트는 기성세대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었다.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들은 포크와 록 음악, 팝송을 좋아하고 지금도 뽕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저항정신이 없는 구시대의 흘러간 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마음이 처지고 슬퍼져 싫어진다는 사람도 많다. 1960년대와 1980년대에 20대를 보낸 상당수 역시 이런 견해에 공감한다. 
 
트로트는 남진, 나훈아, 하춘화, 김연자, 계은숙, 주현미 같은 몇몇 이름값 있는 가수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명맥을 이어가지만 확실히 1970년대 이후 퇴조를 보였다. 이후 1990년대에 태진아가 ‘미안미안해’ 같은 빠른 트로트를 들고 나오면서부터 지금까지 흥겹고 번잡한 곡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회한과 애절함이 가득찬 노래는 점점 신곡 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추세다.
 
기자는 지금도 흘러간 옛 트로트가 좋다. 선친이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고도 성장기에 고된 노동 후 어쩌다 레코드판을 틀고, TV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들으며 흥얼거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사실 돈을 너무나 안 쓰던 선친이 당시엔 사치품이었던 축음기나 TV를 샀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지금도 ‘타향살이’ ‘황성옛터’ ‘나그네설움’ 같은 노래의 가사를 대충 외워 부를 수 있는 것도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서울에 올라와 기자생활을 시작한 초기 5년간은 월요일 저녁이면 ‘가요무대’를 보면서 고향과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슬픈 마음을 달랬다. 직장생활에 적응돼 점점 바빠지면서 시청 횟수는 줄었는데 그 사이 트로트는 가사도 정서도 예전 같지 않게 변했다.
 
또 하나는 계은숙, 김연자 같은 좋아했던 가수가 각각 1985년과 1989년 홀연 일본으로 날아가 20년도 훨씬 넘게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거기서 돈도 벌고 명성도 얻었다지만 계은숙 씨는 사생활 관리를 못해 불행한 면이 보도돼 이를 접하는 팬으로서 안타깝다. 김연자는 2018년 ‘아모르 파티’로 부활했다. 조용필이나 김수철 같은 이들이 젊음의 시간을 메워줬지만 그들이 없어 내 청춘이 다소 적적했다면 욕심일까. 계은숙의 시원한 허스키와 김연자의 간드러진 콧소리는 지금도 내 머리에 깊이 남아 있다.
 
트로트든 7080노래든 대중가요 시장의 인기 부침에 상관없이 지속해서 애정을 갖고 이끌어나갈 책임이 있는 곳이 KBS라는 공영방송이다. ‘콘서트7080’은 2004년 11월부터 14년간 지속하다가 2018년 11월 14년 만에 폐지됐다. 참가 가수나 레퍼토리가 거기서 거기다라는 진부함에서 벗어나고, 다른 장르 가요를 수용해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는 게 당시의 폐지 이유였다.
 
그러나 요즘 정치적 편향 방송과 골든 아워에 과거 ‘동물의 왕국’ 같은 외국 방송사에 제작한 자연 다큐멘터리나 틀어대는 게 과연 콘서트7080을 대체할 더 나은 선택지를 제시했는지 KBS는 자성해야 할 것이다.
 
‘가요무대’는 1985년 11월 4일에 시작해 지금까지 35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의 프로그램 질은 엉망이다. 수 년 전 직접 엄마와 이모님과 함께 방청했는데 낡은 무대가 초라했다. 그럭저럭 꾸려나가는 모습이었다. 더욱이 요즘 문제는 가창력이 부족한, 음색이나 정서가 전통 트로트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가수들이 코너를 메우고 있다는 것.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원로 가수는 하나둘씩 사라지고 점차 출연 횟수가 줄어드니 세월이 야속하다.
 
전통 트로트는 어떨 때 들으면 재즈 같다. 술에 취해서 들으면 위안이 되고, 옛 벗과 막걸리를 마시며 양은 주전자와 탁자를 두들기며 마시면 리듬과 가락이 구성지다. 요즘 무작정 빠르고 필링보다는 비트, 자연스러움보다는 억지 꾸밈음과 스킬에 의지하려는 트로트 풍토에 감히 자기정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글은 삼성서울병원 조홍석 홍보팀장의 팬 레터에서 기본자료를 많이 차용함
  • 정종호 기자‧약학박사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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